Movie2008/04/19 00:13



풍요와 빈곤은 항상 같이 따라다니는데 얼핏 대립같이 보이는 이 두 단어는 대립임과 동시에 같은 단어가 된다. 그것은 완벽히 극중 데니얼을 뜻하는 단어 이기도 하다. 사실상 초창기 미서부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무모한 욕심과 야망의 표현은 하워드 혹스의 <Red river, 1948>에서 이미 나타나 있다. 극중 죤 웨인과 <블러드>의 데니얼은 닮아 있지만 데니얼이 가진것은 한가지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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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상당부분 많이 닮아 있는 죤웨인과 다니엘이다. 개척야욕의 그와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양아들은 항상 함께하는 구도.




데니얼과 토머스(죤웨인, 사진의 왼쪽)은 철저히 혼자다.

이것은 누가 자초한일인가?

극중 데니얼은 토머스와는 달리 다리를 절룩거리며 과거의 상처를 안고 다니는 절름발이다. 물론 영화내에선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친 상처다. 영화내내 절룩거리는 그를 보며 어떤 상처가 이토록 그에게 시기와 질투, 방어를 선물했을까, 우리는 부를 거느린 그를 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본인의 힘만으로는 그렇게 완벽하게 본인을 '홀로' 남겨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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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엇이?

물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다는 말을 종종한다. 그런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체이면 약도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일까. 데니얼은 과거 철저히 사람에게 치인 상처가 깊은 인물인 듯 보인다. 추측건데 그것은 그의 아내인지 아니면 애인인지 확실하게 밝히진 않지만 의복 동생과의 대화에서 그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인물임을 알수 있다. 부가 거느린 빈곤의 상징인 여자놀음씬에서 조차 구석에서 그들을 관망하며 의심을 놓지 않는 그는, 정욕마저 잊어버린 척박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더이상의 상처를 받지않으려면 남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내 상처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 던 것은 다름아닌 '성공'뿐이었다. 이런 강력한 상처의 추억이 Red river의 토마스와 다른 점이다.

사실상의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 종결이다.

종교와 부딪히는 장면은 사실 그 인간의 철저한 외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강한 대립적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그는 사막에서 주운 '철저한' 사생아를 아들로서 맡이 하는데 그 아이는 순수함의 결정체이기에 이 아이에게 만큼은 모든것이 파트너로써의 예우가 갖춰진다. '적어도 이 아이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라는 강한 믿음이다. 그런 믿음이 또 한번 흔들리는 계기는 이북동생의 침실을 태우려는 그의 시도로써 시작이 되고, 그의 아들은 버려지지만 다시 거두어 드리게 되는 것 역시 그 아이의 대한 강한 애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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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갈수록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세속의 종교와의 갈등으로 포커스가 맞추어진다.신앙자체엔 긍정하지만 교회의 세속을 이미 알고 있는 데니얼은 속으로 치를 떤다. 엘라이는 항상 많은 사람들과 함께있고, 데니얼은 항상 혼자인 것은 그들의 대립을 극대화 시켜준다. 그런 데니얼의 아이가 귀가 멀게 되면서 '빌어먹을 종교의 힘을 한번만 믿어보자'였지만 역시나 그건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그것으로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그토록 믿었던 아들이 떠남과 동시에 목사가 등장하고, 그 목사는 그에게 심판을 받게 되면서 모든것은 "It's finished" 된다.

인간이 이러나 저러나 나약한건 마찬가지다. 절대자의 이름을 빌려 주머니를 챙기는 이나 그거에 상처를 쉽게 받는이나 쉽게 주는이나 모두 다 매 한가지다. 여기서 상처는 속세의 대한 상처, 인간의 대한 상처, 무지의 대한 상처 세상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서로 서로 그 나약함을 얼마만큼 감추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차라리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을 하라고 남궁연아저씨는 20대에게 소리치지 않았던가. 자신의 외로움을 치부를 들켜버린냥 그것을 감추려 질투와 시기,혐오,거짓,가식,의심 타인에 대한 경쟁심등으로 꼭꼭 숨겨놓는 것은 결국 피를 부를 뿐이다. 그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결말이지 않던가. 우리는 그저 외로울 뿐이지 않았던가.

'의심'으로 감추기 보다는 '사랑'으로 감추자.

알랭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에서 "사랑없이 의심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고 했다. 뭔 이런 휑휑한 피를 부르는 영화의 대관절 사랑타령이냐, 이걸 핑계삼아 계몽하려거든 당장 꺼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말은 곧, 열정도 있어야 사랑도 하고 모험도 한다.로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사랑으로 상처는 감싸을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으로 상처받으면 사람으로 감싸을 수 있다.고도 믿는다
.
그리고 개인적으론 그 방법이 '옳다.'고 믿는다.

나는 니체의 사상을 존경하지만 니체의 삶을 존경하진 않는다.
쇼펜하우어를 매우 흠모하지만 그의 염세사상이 내 삶에 강력히 투과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것이 맞건 틀리건 사람이건 사물이건 상처받은 나를 나약한 나를 감싸으려 노력하는 그 무엇이 존재 한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나의 외로움을 감싸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 쓸쓸한 영화한편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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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l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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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이 영화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란 제목이 꼭 들어맞더군요.
    그리고 allak님의 감상평에 할말을 잃고 갑니다..^^

    2008/03/31 09:08 [ ADDR : EDIT/ DEL : REPLY ]
  2. 정말 첫페이지에 글이 안나오는군요. 저는 그냥 스킨 적용시키니까 바로 글이 나오던데요..
    그냥 페이지당 글 수를 하나로 설정했을 뿐입니다만..^^;

    2008/03/31 13:45 [ ADDR : EDIT/ DEL : REPLY ]
    • 해결 했습니다. 쓸데 없는 기능이 작동중이었어요!!ㅠㅠ
      고맙습니다.

      2008/03/31 16:24 [ ADDR : EDIT/ DEL ]
  3. 트랙백 잘 받았습니다 ^^
    상당히 분석적이시네요 ㅋ

    중간의 '다니엘'의 외로움 부분은 저와 부합하는 면도 있네요ㅋ

    2009/02/03 12:14 [ ADDR : EDIT/ DEL : REPLY ]
    • 모든사람들이 사실 다니엘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ㅋㅋㅋ

      2009/02/14 15:19 [ ADDR : EDIT/ DEL ]